한국 HR 테크 기업의 미래는 산업생태계 구축에 달려 있다
왜 HR 테크가 하나의 산업이 되어야 하는지, 산업화를 위해 선결 조건인 산업생태계 구축이 왜 필요한지를 살펴본다.
하나의 비즈니스가 산업화가 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산업화 정도를 판별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지표가 있겠지만, 산업연구원(KIET)의 “신성장동력의 산업화 조건과 정책과제(연구보고서 2011-604)”에서 제시한 산업화를 위한 조건의 정의를 참고해 본다면, 전제조건으로서 시장에 충분한 수요가 있는가, 필요조건으로서 인적, 물적, 지식 및 금융 자원의 생산요소가 갖추어져 있는가,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로 충분조건으로서 생태계의 형성 여부로 판단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HR 테크 분야가 하나의 의미 있는 산업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위의 세 가지 조건 - 수요, 생산요소, 생태계의 발전 - 이 충족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의 HR 테크 분야를 대략 (그리고 필자의 주관적 관점에서) 평가해 본다면 수요와 생산요소에 대해서는 이미 그 조건을 충족 했다고 보여진다. 이전까지는 HR 테크를 B2B IT 서비스나 시스템 개발, 소프트웨어 산업이라는 기존의 산업군 내의 한 영역으로 보았다면 이제는 HR 테크 분야를 독립적 산업으로 인정할 수요와 인적, 물적, 자본 등의 생산 요소를 확보했다고 할 수 있다(이 논거에 대한 학술적, 객관적 통계분석과 연구가 이후 필요하다).
그렇다면 산업화를 위한 마지막 충분조건으로서 생태계의 형성에 대해 살펴보자.
산업생태계의 구축 필요성
산업연구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생태계는 특정 산업군의 제품 또는 서비스를 생산하는 주요기업들뿐만 아니라 소재 및 부품을 공급하는 공급자와 완제품을 제공받 는 수요자, 경쟁자 및 보완재를 생산하는 업체들까지 산업환경 내의 모든 이해관계자들이 생태계의 유기체들처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어 서로 상호작용하는 시스템 또는 경제공동체로 정의할 수 있다.”
현재 한국의 HR 테크 산업은 이러한 산업생태계 형성의 직전 단계에 있다고 보인다.
핵심제품 및 서비스의 공급자와 소비자가 존재하고 판매와 구매가 가능하고 거래가 발생하는 영업 및 유통채널이 있다. 아직 존재가 확인되지 않은 것은 업계표준을 제정하고 관리하는 주체와 광의의 산업생태계에 필요한 정부기관의 역할 또는 규제기관의 등장 정도이다.
혹자는 굳이 HR 테크가 독자적 산업으로, 또는 산업생태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는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 주장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의견이 분명 존재할 수 있으나 두 가지 측면에서 그 필요성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1) 산업경쟁력 제고를 위한 HR 테크의 산업생태계 구축
“혁신적 산업생태계의 발전 비전은 참여자들이 서로의 핵심역량을 필요에 따라 탄력적, 동태적으로 조합함으로써 스스로 새로운 질서와 패턴을 형성하여 적응 해법을 지속해서 모색하는 것이다. (Moore, 1996)"
현재 한국 HR 테크 뿐 아니라 모든 산업 영역에서는 무한 경쟁의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 승자독식(Winner takes all)이라는 패러다임에 대응하여 협력보다는 경쟁이 우선된다.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무리한 가격할인 또는 저가의 서비스가 나오기도 하고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함유한 혁신의 의미보다는 생산성 향상으로 포장된 비용 절감을 고객 가치로 내세우기도 한다.
HR 테크가 다른 기술 기반 비즈니스와 차별화되는 특성 중의 하나가 바로 포인트 솔루션과 통합 패키지라는 비즈니스 모델에서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특성이 경쟁을 심화하는 요소가 되기도 한다.
경쟁과 협력의 균형을 위한 경제공동체
포인트 솔루션은 전체 HR 프로세스 중에서 특정 영역 또는 기능에 집중한 서비스와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고 통합 패키지(올인원 또는 Suite라고도 한다)는 HR의 모든 프로세스에 대응하는 서비스와 시스템 및 기능을 포함한다. 아무래도 Suite, 즉 통합 패키지의 구현과 개발은 더 많은 자원과 개발 리소스를 요구하기도 하고 시장이나 고객의 pain point에 집중하여 사업의 기회를 찾는 스타트업의 경우 포인트 솔루션이 태생적으로 잘 맞는 모델이다. 그런데, 하나의 포인트 솔루션으로 시작했지만 계속되는 고객의 통합 프로세스 구현의 요구에 대응하다 보면 점진적으로 Suite 형태의 통합 패키지로 진화해 갈 가능성이 높아 진다는 것이다.
이는 HR 영역의 가장 핵심적 데이터가 ‘사람’에 대한 것이고, 구현되는 프로세스가 그 ‘사람’의 조직 내 경험과 라이프 사이클을 다루는, 연결된 가치사슬하에서 관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직원의 채용단계부터 퇴사까지의 일련의 모든 과정이 seamless 한 프로세스로 운영되는 것을 이상적인 상태로 보기 때문에 기업 고객 관점에서는 각각의 기능을 다른 솔루션으로 구현하기보다는 하나의 통합된 플랫폼하에서 운영하기를 원한다는 근본적 니즈가 있다. 독특한 아이디어나 필요에 의해서 특성화된 포인트 솔루션을 구매, 사용하다가 점차 연관된 전후 영역의 프로세스와 통합을 요구하게 되면 서비스를 제공하는 HR 테크 기업들도 점차 기존 기능에서 확대한 서비스로 기능을 부가하게 되고 이것이 인접한 다른 서비스나 솔루션과 중복되기 시작한다. 이전에는 프로세스 상 서로가 연결되는 협업의 관계이였지만 어느 순간 경쟁관계가 되어 버린다.
채용 솔루션과 서비스로 사업을 시작했지만 올인원 HRMS 패키지를 제공하기 시작하고, 회사 평판 서베이 및 정보제공에서 채용 솔루션과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하는 경우 등이 이러한 사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글로벌 사례에서도 EOR과 글로벌 급여관리 서비스로 시작한 Deel 이 최근에 HR 올인원 시스템을 개발하여 기존 고객사들 중 200인 이하의 규모에는 무료로 쓰는 파격적이고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있다.
경쟁을 통해서 결국 고객(소비자)들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는 것이 경제의 논리이지만 이러한 산업 구도하에서 서로 간의 제휴 공동체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소수 기업의 독과점이 아닌 전체 산업의 성장을 위한 재투자와 지식과 역량의 공유가 가능한 선순환 구조를 형성해야 공생(共生)이 가능할 것이다.
산업의 성장을 위한 인력의 육성과 공급
산업생태계 구축이 필요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바로 산업에서 필요로 하는 인력의 공급을 위해서이다.
HR 테크 산업화를 이룬 대표적인 국가인 미국의 경우 산업에 필요한 인재 육성을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과 자격증 및 인증을 관리하는 기구나 단체들이 활발한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예 중의 하나가 IHRIM(International association for Human Resource Information Management) 라는 단체다. 기업 내에서 HR 테크 또는 HRIS 관련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개인과 대학의 학생과 교수까지를 포함하여 멤버십을 운영하며 HRIP(HR Information Professional) 이라고 하는 자격증 제도를 발급하기 위한 시험관리와 교육 과정을 제공하고 있다. 1980년에 구성된 단체로 기업의 CEO 나 CHO 또는 HR 테크 기업 경영자들, 관련 학과의 교수들이 이사회 멤버로 참여하는 비영리 사단법인 성격의 조직이다.
국제표준 인증과 산업 공통 인프라의 구축
ISO30414 은 2018년 처음 제정된 기업의 HR 관련 사항을 비교 가능하도록 표준화된 기준과 가이드로 공표할 수 있도록 하는 규약이다. 2020년 미국의 증권거래위원회에서 미국 증권거래소를 통해 주식, 채권 또는 파생상품을 발행하는 모든 회사에 인적자본 지표에 대한 공개보고를 의무화 하면서 ISO30414의 효용성이 급부상하게 되었고 세계 최초로 2020년 10월 도이체방크가 ISO30414 인증을 받으면서 점차 글로벌 기업으로 확대되어 가는 추세다.
ISO30414는 기업 뿐 아니라 HR 테크 기업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줄 수 밖에 없는 내용이다. ISO 표준에 대응하는 각종 지표의 관리와 보고서 작성을 위해서는 그 로직과 내용에 기반한 데이타 관리가 필요하고 HR솔루션 회사들에게도 대기업을 대상으로 서비스나 상품을 제공하는 경우 중요한 자격 요건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생태계를 구축의 필요성이 바로 이러한 표준을 제정하고 적용하거나 국제 표준에 대응한 개발 방법론이나 설계의 표준을 공표, 공유하기 위한 것이다.
최근에 ChatGPT 로 갑작스럽게 다가온 인공지능과 같은 빅데이터의 구축에 대응하는 상황이나 web 3 기반의 블록체인과 같은 인프라 구축에서도 산업생태계를 통한 중복된 투자를 최소화하기 위한 조율과 협업의 기능도 고려해 볼 수 있다.
2) 글로벌 시장의 사례를 통한 산업생태계 구축 타당성 검증
HR 테크가 하나의 산업으로 의미가 있을지를 확인하려면 다른 국가, 시장의 상황을 들여다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산업생태계 구축 현황을 어떤 관점에서 봐야 할지 고민이 되지만 관련된 행사나 컨퍼런스를 하나의 지표로 인식해 보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관점에서 주요 국가에서 열리고 있는 HR 테크 행사와 그것을 주관하고 있는 조직이나 회사에 대해 살펴본다.
분기별로 CES급 HR 테크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는 미국
지난 1월에 라스베이거스에서 10만명 이상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국제전자제품박람회에 대해 국내 기업들의 참석과 언론의 보도로 많은 관심을 받았다. 참석인원 규모로 본다면 그정도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분기에 한번 정도 라스베이거스에서 수천명에서 만명 이상의 참석자가 모이는 HR Tech 관련 행사가 열리고 있다.
이번 4월에 라스베거스에서 열리는 Unleash 라는 미디어 회사의 HR Tech Summit in America 도 대표적인 행사 중의 하나다.
이 행사는 동일한 포맷으로 매월 9월경에 프랑스 파리에서 Unleash Global 이라는 타이틀로 개최되고 있다. 우리 나라 기업의 HR에서도 소수 이지만 매년 참석하고 있는 행사 중의 하나다.
10월에는 동일하게 라스베거스에서 HR Technology Conference 가 HR Executive 라는 회사 주관으로 열릴 예정인데 만명 이상이 참석하는 규모에서는 가장 큰 행사이다.
위에서 언급된 IHRIM 과 같은 비영리 성격의 단체 보다는 커머셜한 목적의 다양한 기관과 회사들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고 할 것이다.
중국의 HR 테크 산업생태계 구축 현황
한국과 인접해 있으면서 우리의 주관적 판단에는 산업화에 있어 한국보다 뒤쳐져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중국의 경우에도 이미 2016년에 HR Tech China 라는 회사가 등장하여 다양한 사업과 이벤트 등을 주관하고 있다. 특히 매년 각 분야별로 HR 테크 회사를 심사하여 어워드를 공표하고 있고 중국 내 모든 HR 테크 회사들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 mapofhrtech.com 이라는 별도의 사이트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 HR 테크 회사들을 분야별로 열람할 수 있는 데이터 베이스나 웹사이트가 현재 존재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어떤 면에서는 산업생태계 구축에서 차이가 있음을 엿볼수 있다..
일본의 사단법인 HR Technology Consortium
또다른 가까운 나라 일본의 경우에도 HR Technology Consortium 이라고 하는 사단법인 형태의 조직이 구성되어 일반기업과 HR 테크 기업을 구분하여 회원 가입 형태로 운영되고 있다. 2015년에 소규모의 모임으로 시작되어 2020년에 사단법인 형태로 전환되었다. 2020년 사단법인 출범 이후 매년 1회 HR 테크놀러지 심포지움 이라는 행사와 다양한 정보 공유 세미나와 교육 강좌를 개설, 운영하고 있고, 특히 ISO30414(국제표준 HR보고서 가이드)와 관련한 활동이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사단법인 안에 다양한 워킹그룹(Workin Group) 을 구성해서 회원사들 간에 자발적인 교류와 정보공유를 유도하고 있는 것도 하나의 특징으로 보여진다.
동남아시아의 HR 테크 산업생태계의 허브, 싱가포르
많은 글로벌 기업의 아시아 지역본부가 위치하고 있고 지리적으로 인도까지 아우를 수 있는 싱가폴의 경우에도 HR Tech 기업들이 활발하게 사업을 벌이고 있는 곳이다. 싱가포르라고 하는 한 국가만을 타겟하기 보다는 인접해 있는 다른 아세안 국가들과 화교 네트워크를 통해서 중국까지도 커버하려는 많은 글로벌 회사들이 위치해 있다 보니 관련된 네트워크나 커뮤니티가 발달해 있다.
대표적인 조직으로는 HRM Asia 라는 곳이 있고 이 회사가 주관하는 5월의 HR Tech Festival Asia 라는 행사가 HR Tech 기업들과 고객 기업들, 투자사 참가하는 대표적인 행사 중의 하나다.
한국 HR 테크 산업생태계 구축을 위한 첫걸음
산업생태계는 복잡성, 공진성, 적응성이라는 3가지 특성을 갖는다고 한다.
산업생태계 내의 플레이어들이 독립적이면서도 서로간에 연결되어 있어 가치 활동이 복잡하고 생태계 내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성장해 가는 공진화적 특성, 그리고 산업생태계의 유지를 위해 외부 환경에 공동대처하며 적응해 간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 HR 테크 산업에 모두 필요한 요소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기 어려운 한국 경제의 구조적 특성과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출생율에서 드러난 인구절벽의 심각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기업의 글로벌 진출은 한국 경제의 숙명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개별 기업이 각자의 능력 껏 해외 진출을 돌파하는 것은 자원과 시간의 중복 투자가 필연적이고 그 과정에서 많은 기업들은 시도조차 해보기 어려울 것이다. 이미 국가별로 형성된 산업생태계와 연결하여 새로운 협업의 관계를 형성하고 저비용의 효율적 해외 진출의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산업생태계 구축은 이제는 선택이 아닌 것이다.
거기에 새롭게 대두되는 ESG와 연결되어 있는 ISO30414 인증에 대응하기 위해서 국내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도 관련된 기업들의 협력과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2023년 4월6일 디지털보난자 주관의 HR 테크 Perspective 가 이러한 HR 테크 산업 생태계 구축을 위한 시발점이 되기를 바라며 많은 관련 기업들과 관심있는 분들의 참석을 기대해 본다.